현대아파트자료

[스크랩] 도당(都堂)과 마을제사 (압구정도당)

압구정 2008. 5. 10. 23:26

 

 

소재지 : 신사동 364-2 근방. 신목이었던 느티나무만 서있고 당집은 없어진 지 오래다.

당 형태 : 2칸의 양철지붕에다 판자로 지은 건물이었다. 신목 뒤쪽에 당이 있었으나 수십년 전에 철거되어 정확한 모습을 알기는 어렵다. 무당이 거주하며 굿을 하고 신상이 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제법 큰 규모의 당으로 짐작된다.

신목 : 200년 수령의 느티나무로 크기는 둘레 3.2m, 높이15m. 1982년 10월 시지정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신상 : 제보자의 희미한 기억으로는 대나무가 있었고 빨간색과 노란색 띠가 있었다고 하는데, 오방신장기일 가능성이 있다. 대나무는 내림대로 쓰인 것인지도 모른다. 정확히 어떤 신상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유래와 전승 : 조선조 세조 때는 원단(圓壇)을 모아 하늘에 제사지낸 곳이라고 소개된 점으로 미루어, 이곳 도당은 매우 역사가 깊은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전해내려오는 압구정 도당이라는 명칭은 20세기에 들어와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신사동 지역은 이름 그대로 한강물이 범람하여 모래가 쌓여서 이루어진 지역이고, 압구정동이라는 동명은 유명했던 압구정자가 세워진 이후 조선 말부터 자리잡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소를 잡아서 진설하고 무당 사오명이 마을의 무사무탈과 번영을 위해 도당굿을 벌였다는 점으로 보아, 이 인근 부락의 대규모 대동굿이 이 곳에서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제3한강교가 가설되고 개발되면서 당집은 헐리고 이곳의 원주민들도 떠나고 없는 상태라 이 도당굿의 모습을 찾기는 어렵게 되었다. 마을 주민들의 신앙의 대상이자 삶에 힘을 불어 넣어주던 활력소 역할을 하던 도당은 사라지고, 고층 아파트 숲에 가려 외로이 서있는 신목만이 옛 자취를 풍기고 있다.

제의 시기 : 매년 10월 초순에 도당굿을 하였다.

제의 순서 : 강가로 나가서 신을 모셔오고, 이후는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굿 절차를 따랐다. 강가에서 신을 모셔온 것으로 보아 용왕신을 모셔다가 용왕굿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제사비용과 제물 : 규모가 상당히 크고 제비도 많이 들었을 것이다. 다른 지방과 마찬가지로 각 가정에서 추렴을 해 충당했다고 본다. 제물로는 소를 잡아 진설했으며 백설기를 올렸다. 북어를 쓴 점이 특이하며 과일도 준비했다.

제관과 참여자 :10명 내외의 제주(祭主)가 있었다고 하는데, 화주일 가능성이 있으며 그 중에서 한두명의 제주가 있었을 것으로 본다. 제주와 제관을 합쳐 10여명이 제를 주관하며, 그외 다수의 동네 사람들이 참여하였다. 무당 사오명이 굿을 진행하며 수명의 잡이가 반주를 맡았다.

당주(堂主) : 무당이 당에 거주한 것으로 보아 당주는 무당이었을 것이다. 당주는 수시로 굿을 해주었다.

 

자료출처 : 강남구청

출처 :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글쓴이 : 최홍진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