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래
압구정동은 조선 세조 때 권신 한명회(1415~1487)가 지은 압구정이라는 정자가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 압구정이 있던 자리는 북쪽의 옥수동과 금호동의 동호 일대와, 지금은 없어졌지만 조선시대 닥나무가 무성했던 저자도가 그림처럼 펼쳐졌으며, 멀리는 북한산의 여러 봉우리까지 시야에 들어와 절경을 이루었다 한다. 압구정이라는 정자가 언제 자취를 감추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철종의 딸인 영혜옹주와 결혼한 박영효에게 저자도와 함께 하사되었고 고종 21년(1884) 10월 갑신정변을 일으켜 그가 역적으로 몰려 전 재산이 몰수될 때 압구정도 몰수되어 고종 말년에 다시 찾았으나 언제 없어졌는지는 확실하지가 않고 다만 현대아파트 72동과 74동 사이에 압구정 터임을 알리는 바위돌만이 우뚝 서 있다. 조선시대 압구정동의 자연 부락은 뒤주니, 먼오금, 옥골, 장자말 등이 있었다. 뒤주니는 압구정 밑에 있는 마을로 압구정을 뒤지고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먼오금은 압구정구내에 있던 마을이었고, 옥골은 한강물이 마을 앞에 흐르므로 붙여진 이름으로 옥골 뒷산에서는 석기시대 돌도끼가 출토되기도 했었고, 장자말은 옛날 큰 부자가 살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장자울이라고도 불렀고 기와집이 많았다고 한다. 이 마을은 강변에 위치한 전형적인 농업 위주의 마을이었으며 일제 하에서는 배밭 등 과수원을 주농업으로 해온 마을이기도 하다.
자료출처 : 강남구청 |